ART

전장을 그린 붓끝, 미즈노 토시카타의 <평양전투>와 <성환전투>

insight1123 2025. 4. 14. 12:34

1. 전쟁을 기록한 일본 판화, 그 안의 의도

19세기 말 일본에서 유행한 우키요에 판화는 대중적 소비를 위한 이미지 매체로, 시대를 반영한 다양한 주제를 다뤘습니다. 특히 청일전쟁(1894~1895) 당시에는 전쟁을 다룬 **니시키에(색채 목판화)**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시기 많은 화가들이 전장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쏟아냈고, 그 중심에는 **미즈노 토시카타(Mizuno Toshikata)**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양전투>, <성환전투> 등 청일전쟁을 주제로 한 여러 작품을 통해 일본의 군사력과 우월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했습니다.


2. <평양전투>: 영웅화된 일본군의 리더십

<평양전투> (출처: https://m.blog.naver.com/printart/220649384972)

 

<평양전투>는 1894년 9월 15일 조선 평양에서 벌어진 전투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화면 중앙에는 검은 군복을 입은 일본 장교가 군을 지휘하며 등장하고, 그의 위로는 욱일기가 힘차게 펄럭입니다. 배경의 일본군은 정렬된 모습으로 전투에 임하는 반면, 청나라 군사들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습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전투 장면이라기보다 영웅적 일본군 장교의 존재감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입니다. 흙먼지와 총성 대신, 시각적으로 정제된 구도와 상징적인 자세가 강조됩니다. 토시카타는 이 그림을 통해 일본군을 근대적 질서와 문명화의 상징으로 설정하고, 청나라 군을 퇴화되고 약한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3. <성환전투>: 전쟁의 선전장으로 전락한 회화

<성환전투> (출처: https://brunch.co.kr/@kgbkim/22)

 

<성환전투>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1894년 7월 29일 충청남도 성환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청나라 군을 압도합니다. 화면 중앙의 일본 장교는 칼집에서 검을 뽑으며 공격 명령을 내리는 역동적 자세로 등장하며, 주변 병사들도 활기차게 움직입니다.

 

반면 화면 왼쪽 하단에 그려진 청나라 병사들은 인물의 형태조차 흐릿하고 묘사도 미약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오른쪽 하단에 배치된 서양식 복장을 한 종군기자와 화가입니다. 이들은 마치 관찰자처럼 전투를 지켜보며 기록 중이며, 그 표정은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군뿐 아니라 기록과 미술마저도 근대화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암시합니다.


4. 미술가의 윤리, 그리고 시선의 왜곡

**미즈노 토시카타의 <평양전투>와 <성환전투>**는 전쟁을 기록한 작품임에도 사실성보다는 일본 제국주의의 이념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합니다. 작품 속 일본군은 정돈된 강자의 모습이고, 청나라 병사들은 패배자로 형상화됩니다.

 

이러한 시각은 대중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회화가 전쟁의 공포를 그리는 수단이 아닌, 전쟁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예술은 진실을 외면한 선전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