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는 예술 – 함경아

insight1123 2025. 4. 5. 17:12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한 전시를 보고 나온 길, ‘예술은 결국 인간의 정치적인 존재성을 질문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이름이 바로 함경아였습니다. 작품 속에 녹아든 정치적 현실, 그리고 그것을 에둘러 말하는 세련된 은유. 지금 우리의 시대성과 가장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작가 중 하나로, 저는 함경아를 꼽고 싶습니다.


🧵 보이지 않는 손과 협업하는 작가

함경아는 1966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SVA에서 순수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서울 대안공간 루프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쌈지스페이스, 아트선재센터 등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국내외 미술계에서 차근히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해외 비엔날레에서 주목받는 글로벌 작가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의 작업은 철저히 로컬의 현실, 특히 한국이라는 분단국가의 구조를 체감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복합성과 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 북한 자수공예가들과의 협업,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이야기

제가 처음 함경아의 작업을 직접 본 것은 2015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유령의 발자국》이라는 전시였습니다. 전시장에 걸려 있던 화려한 샹들리에 자수 작품들은 얼핏 보기엔 아름답고 정교했지만, 그 이면에는 북한 자수공들과의 비공식적 협업, 검열, 시간, 위험 등 수많은 보이지 않는 서사가 숨어 있었죠.

그는 자신이 만든 도안을 제3국의 중개인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고, 그것이 완성되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어떤 작품은 끝내 돌아오지 않고, 어떤 작품은 수정되어 오기도 하죠. 저는 그 불확실성과 기다림, 통제되지 않는 예술의 조건 자체가 함경아의 작업이 던지는 질문이라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함경아 작가의 '샹들리에-자수 회화 연작' (출처:  함경아 '자수 회화', 아트바젤홍콩 인카운터스 참가 )

 


🎯 정치적 메시지, 그러나 아름다움은 잃지 않는다

함경아의 작품은 흔히 말하는 ‘정치적 예술’이지만, 그것이 관람자에게 피로감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려하고 정교한 형식이 먼저 시선을 끌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가 천천히 다가오게 만듭니다. 대표작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연작은 바로 그런 층위에서 작동합니다.

작품 아래에는 자수를 만든 시간, 참여한 사람 수, 뇌물의 양까지 상세히 기재되어 있는데, 이 데이터를 보며 관람자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게 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업은 흔치 않죠.


📦 평범한 것에서 정치성을 끌어내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분단 현실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사물, 거리에서 수집한 사소한 물건, 혹은 버려진 물품들로부터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포착해냅니다. 폐기된 대통령의 물건을 모아 구성한 설치작업이나, 동남아의 바나나 가격 폭락에서 시작된 리서치 기반 프로젝트 등은 예술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개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이 마치 ‘현실을 우회적으로 서술하는 시’ 같다고 느꼈습니다. 감정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말하지만, 그 안에서 관람자의 감정은 더욱 깊게 흔들립니다.

함경아 작가 인터뷰 캡쳐본(출처:  https://youtu.be/BDnDV51Ewh0?si=SZByheBb0pyxfttW )

 


🌍 2025년, 독일 베를린에서의 새로운 전시

최근 확인된 바에 따르면, 2025년 3월 20일부터 4월 12일까지, 독일 베를린의 쾨니히 갤러리 텔레그라펜암트(König Galerie Telegraphenamt)에서 **《UNBOXING PROJECT: Message》**라는 특별한 전시에 함경아 작가가 참여합니다.

이 전시는 ‘메시지’를 주제로 한국 현대미술 작가 22인의 신작을 소개하는 자리이며, 함경아는 새로운 소형 작업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의 대표 연작과 연결되는 이번 작품 역시,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의 협업, 그리고 검열과 기다림의 시간이라는 테마를 이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베를린의 구 전신국 건물을 개조한 전시 공간에서, 관객들은 함경아의 작품을 통해 ‘전달되지 못한 메시지’의 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 작품을 통해 현실을 다시 바라보다

우리는 때때로 현실이 너무 복잡하거나 무력해 보여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함경아의 작품을 보고 나면, “세상은 보이는 대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금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담담하게 꿰뚫는 예술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예술을 통해 가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 함경아

그 문장이 이토록 무겁고 명료하게 다가오는 순간은, 결코 많지 않을 겁니다.


📌 작가 정보 요약

  • 이름: 함경아 (Ham Kyungah)
  • 출생: 1966년 서울
  • 주요매체: 자수, 설치, 영상, 사진, 리서치 기반 작업
  • 주요주제: 분단, 검열, 소통의 단절, 권력 비판
  • 소속 갤러리: 국제갤러리, 페이스갤러리, 칼리에 게바우어

✍️ 이 글을 읽고 함경아 작가의 작품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면, 가까운 미술관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다음 전시가 어디서 열릴지 기대하며,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그 여정에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