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전쟁을 그린 예술가, 오토 딕스의 끝없는 악몽

insight1123 2025. 4. 14. 12:14

1. 전장을 선택한 청년, 예술가가 되다

**오토 딕스 작가(Otto Dix)**는 20세기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붓으로만 세상을 표현한 예술가는 아닙니다. 그는 직접 총을 들고 전장에 나섰고, 이후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평생 동안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딕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발적으로 독일군에 입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나는 리얼리스트다”라고 선언하며, 전쟁이라는 현실을 직접 보고 겪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렇듯 사실을 체험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관은 전쟁을 거치며 극단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2. 전장에서 태어난 작품들

<자화상> (출처: https://brunch.co.kr/@ac5feed12284416/124)

 

오토 딕스 작가는 전쟁 중에도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훈련소에서 찍은 듯한 ‘군인 자화상’은 삭발한 신병의 날카로운 눈빛과 긴장감을 강렬하게 담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폴란드 동부 전선, 북프랑스와 벨기에 등에서 실전을 경험한 딕스는, 무려 600점이 넘는 전쟁 스케치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현장에서 보낸 시각적 보고서였습니다. 그는 전우들의 피로, 전장의 긴장감, 폐허가 된 마을의 풍경 등을 엽서와 작은 종이에 그려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예술가가 병사였고, 병사는 또 기록자였던 셈입니다.


3. 3폭 제단화, ‘전쟁’이라는 성스러운 비극

<전쟁> (출처: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2164605)

 

전역 후 딕스는 거의 강박적으로 전쟁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작이 1929년부터 3년에 걸쳐 완성한 『전쟁(Der Krieg)』입니다. 이 작품은 중세 제단화 형식을 따르며 4가지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왼편엔 안개 속에서 출전하는 병사들이, 중앙 위엔 참호 속 처참한 시신들이, 오른쪽엔 부상자를 들쳐 업고 있는 딕스 본인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하단에는 살아남은 병사들이 지친 채 잠든 모습이 그려져 있죠.

 

이 작품은 전쟁의 시작, 과정, 결말을 한 화면 안에 모두 압축한 듯 구성돼 있습니다. 중세 종교화의 경건한 구성을 빌려, 전쟁이라는 인간의 야만을 고발하는 상징적 제단으로 바꾼 것이죠.


4. 평생 그린 전쟁, 끝나지 않은 트라우마

오토 딕스 작가는 전쟁 이후에도 줄곧 전쟁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정화하려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년 동안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꿨다. 포복을 하며 폐허 사이를 기어 다니는 꿈이었다. 벗어나려 했지만 끝내 탈출할 수 없었다.”

 

 

그에게 그림은 퇴마의식과도 같았습니다. “나는 많은 것을 그렸다. 악몽, 전쟁, 무서운 것들... 그림은 내면에 질서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그의 작품 속 전쟁은 피로와 공포, 그리고 감정의 잔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전쟁은 그를 바꾸었고, 그는 그림으로 세상에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