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장을 향한 붓, 예술가 아사이 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아사이 추 작가(1856~1907)**는 일본 근대 서양화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전원생활을 정감 있게 그리던 그는 청일전쟁을 계기로 전쟁화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특히, 신문사 지지신보의 통신원 자격으로 파견되어 직접 전장을 목격하고 그림을 남긴 경험은 그의 화풍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일본 화가들 중 많은 이들이 정부나 언론사의 의뢰를 받아 종군화가로 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사이 추 작가는 스케치와 유화를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내국권업박람회 등 주요 전람회에 출품했고, 그의 그림은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 인도주의의 얼굴을 한 선전: 『히구치 대위, 어린이를 돌보다』
가장 대표적인 전쟁화 중 하나인 『히구치 대위, 어린이를 돌보다』는 일본군의 인도주의적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한 작품입니다. 전쟁 고아가 된 청나라 아이를 돌보는 히구치 대위의 따뜻한 모습은 일본군을 ‘문명국의 군인’으로 이상화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청나라 군 포로의 비열한 모습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일본군과 청나라 군인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포로는 변장을 시도하다 발각된 모습으로,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시각적 장치로 사용됩니다. 이처럼 작품은 인간애를 가장한 이미지 속에 제국주의적 논리와 메시지를 교묘히 내포하고 있습니다.
3. 학살의 미화, 『여순 전후의 수색』
1894년 11월 여순을 점령한 직후 자행된 여순학살사건은 일본 제국주의의 민낯을 드러낸 비극이었습니다. 아사이 추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여순 전후의 수색』을 제작합니다. 그림은 학살이 일어난 직후의 현장을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입장을 반영해 학살의 정당성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작품에는 청나라 병사가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위장한 장면이 그려지며, 일본군의 무차별 살해를 정당화하려는 논리를 따라갑니다. 그러나 작품 속 그림자의 방향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에서 현장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후에 조작된 장면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고, 전시회에서 묘기 2등상까지 수상했습니다.
4. 예술은 누구의 목소리를 담아야 하는가
『히구치 대위, 어린이를 돌보다』와 『여순 전후의 수색』 모두 내국권업박람회에서 수십만 관람객에게 공개되었고, 일본의 전쟁 이미지 구축에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현실의 고통과 폭력을 미화한 시각적 전략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아사이 추 작가는 시대의 요청에 응답했을 뿐이라는 옹호도 있지만, 예술이 갖는 고유한 비판성과 자율성을 포기한 점에서 한계 또한 분명합니다. 미술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사회적 목소리와 문제 제기의 도구로 여겨지는 오늘날, 당시의 전쟁화는 예술가의 윤리와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묻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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